소개
'클루지 Kluge'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들어본 단어입니다.
클루지란 어떤 문제에 대해 서툴거나 세련되지 않은, 하지만 매우 효과적인 해결책을 뜻합니다. 맥가이버가 빨리 도망치기 위해 고무 매트와 테이프로 신발을 급조한 것처럼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맥가이버의 탈출에 가장 도움을 많이 줬던 것처럼 말입니다.
개리 마커스의 클루지에서는 인간인 우리의 몸과 마음이 완전하지 않은 클루지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결국 불완전하고 비완전한 클루지라고 합니다. 저자는 인간의 마음이 형성될 때는 '진화의 관성'이라는 것이 적용되었다고 하며 진화의 관성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서툴고도 복잡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보통 우리는 이토록 발전해 온 인간이라는 종을 다른 동물과 차별적이며 때로는 고귀하고 가장 완전한 생명체로 봅니다. 하지만 인간이 진화해 온 건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듯 진행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진화해 온 것들을 바탕으로 그럭저럭 쓸만한 해결책, 즉 클루지가 발견되면 그것이 선택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척추는 사족보행을 하다가 직립보행으로 인간이 진화하면서 더 낫게 발전하지 못했고 그저 그럭저럭 쓸만했기 때문에 유지가 된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몸뿐만 아니라 인간의 마음도 이와 같이 불완전하며 때때로 엉뚱하게 행동하기도 하는 클루지인 것입니다.
읽는 내내 읽기 어렵다, 재밌는 책은 아니다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책이 하나의 논문처럼 쓰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나의 논점을 가지고 지속해서 증명하고 또 어떤 주장은 다른 증거들로 비판하는 형식으로 책은 쓰였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도 불완전한 클루지임을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언어학자들의 주장을 가져와 설명하고 저자의 생각은 어떻다는 걸 또 증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이론과 증거를 끌고 와서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논문이면 모를까 가볍게 읽고자 하는 마음으로 펼쳐든 책으로는 조금 읽기 부담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몸과 마음, 언어, 행동에 대해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고 진화심리학을 다뤘다는 점에서 학계에서는 흥미롭게 다뤄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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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몇 가지 인상 깊었던 내용을 요약해서 소개하겠습니다.
1. 인간은 '맥락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것을 기억 속에서 가져오기 위해 맥락이나 단서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맥락 기억의 장점은 기억의 우선순위를 매겨 가장 유용해 보이는 정보를 가장 빨리 머릿속으로 불러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맥락 기억의 큰 단점은 단서를 중심으로 조종되기 때문에 쉽게 혼동이 일어나 신뢰하지 못할 기억과 정보를 야기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보는 극 중 인물을 실제로 오프라인에서 만나게 되면 순간적으로 배우의 이름이 기억 안 날 때가 있습니다. 이는 나의 맥락 기억 속에서 그 배우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배우이고 현실에서 맞닥뜨리기에는 낯선 존재기 때문입니다.
2. 저자는 인간의 사고를 크게 두 종류로 분류합니다. 빠르고 자동적이며 주로 무의식적으로 진행되는 오래전부터 인간에게 체내 되어 있는 반사 체계와 훨씬 늦게 발전한 신중하고 판별력 있게 진행되는 사고방식인 숙고 체계입니다. 숙고 체계는 아마 인간만이 지닌 체계일 것입니다. 진화는 우리에게 매우 상이한 두 가지 체계를 주었습니다. 반사체계는 틀에 박힌 일을 처리할 때 뛰어난 능력을 발휘합니다. 반면, 숙고 체계는 틀을 벗어나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때 유익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때로 멍청한 행동을 하면서 동시에 그 행동이 멍청하다는 것을 압니다. 두 체계가 뇌 속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며 이 때문에 우리는 논리와 정서 사이에 긴장이 생기면 때로 감정적인 선택을 내리기도 하고, 때로는 깊이 고민하다가 이성적인 선택을 내리기도 합니다. 두 체계의 장단점을 인식하고 조화롭게 사고할 때, 편향을 밝힐 수 있고 또 이를 극복할 전략을 스스로 세울 수 있습니다.
3. 인간의 언어는 복잡한 음성 체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호흡, 발성, 조음기관의 작동으로 소리를 내면서 의사소통의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소리를 산출하는 도중 다음 소리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빨리 말할 때 말이 겹치기도 하고 가끔 다른 사람의 말을 못 알아듣는 이유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가 말하는 언어가 나에게는 분명해도 상대에게는 분명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말하는 사람은 보통 몸짓이나 표정, 손짓 등을 통해 언어를 보완합니다. 회사에서 이메일이나 전화 통화가 오해의 소지를 더 자주 일으키는 것도 이것입니다. 코로나 때를 생각해 보면, 재택근무를 할 때 처음에 의사소통의 오류를 많이 겪었었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비대면 회의보다 대면 회의를 선호하는 건 단순 언어로만 의사소통했을 때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의사소통이 쉽게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4. 행복과 쾌락은 서투른 마음의 동기 유발자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대부분의 쾌락은 장기적으로 숙고해서 나오는 숙고 체계가 아닌 단기적인 편인 반사체계의 영향 아래 있습니다. 완벽하게 조율된 기제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손쉽게 그리고 기분 좋게 속아 넘어갈 수 있는 기제를 다양하게 모아놓은 것이 우리의 쾌락 중추입니다. 또한 인간은 금방 순응하고 적응하기 때문에 행복은 오래 머무르지 못합니다. 돈을 많이 가지게 되면 초기에는 엄청난 만족을 가져다주지만 우리는 곧 익숙해집니다. 정말 중요한 건 돈의 절대적인 가치보다 상대적으로 내가 남보다 얼마나 더 부자가 되었냐입니다. 그래서 스스로의 부나 생활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행복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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