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1995년 처음 출판된 <새의 선물>은 100쇄 인쇄를 기념하여 다시 출판되었습니다.
<새의 선물>을 인생책으로 뽑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삶과 사랑에 대해 냉정한 시선을 유지하려는 어린아이의 시선과 통찰력, 그리고 그 속에서 진희뿐 아니라 소설 속의 모든 인물들이 성장하는 걸 지켜보면서 왠지 진희와 주변 인물들이 아직 어디선가 살고 있을 것만 같아서인 것 같습니다.
책을 읽을 때는 빨리 읽어 내려가고 싶었는데 다 읽고 나니 여운이 남아 다시 읽고 싶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건 열두 살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려 했지만 열두 살의 시선을 가장한 어른인 작가의 시선으로 느껴져 크게 와닿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 읽고 나니 '이미 삶을 완성한' 아이가 아니라 '삶을 완성했다고 생각한' 아이, 그래서 남들보다 조금 성숙하고 냉소적인 아이의 시선에서 그려낸 60년대 한국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60년대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 산업화가 시작되며 여기저기 들어서던 공장들과 사고, 대학생들의 민주화 운동 등 사회적인 현상과 사건들을 아이의 시선에서 무겁지 않게 잘 담아냈다고 생각합니다.
열두 살 진희는 자신의 삶을 '보이는 나'와 '바라보는 나'를 따로 둠으로써 삶을 객관화하고 냉소적으로 바라봅니다.
어린 시절 엄마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자신을 찾지 않는 아빠에게는 마음을 닫고 일찍 어른이 되어버렸습니다. 진희는 외할머니집에서 철없는 스무 살의 이모, 할머니의 자랑인 서울대 법대를 다니는 삼촌과 함께 할머니가 세를 내줬기 때문에 광진테라 아저씨와 아줌마, 장군이네, 이선생님, 최 선생님과 같은 다양한 사람들과 한 집에서 살아갑니다. 한 집에서 살기 때문에 그들 모두는 미우나 고우나 식구라 생각하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상들과 사건들이 이야기를 다채롭게 만듭니다. 진희는 고작 열두 살에 '삶을 너무 빨리 완성했다'며 그 이후 더 이상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고 책의 서두에서 밝힙니다.
성숙하지 않은 어린아이를 맡은 진희는 어른들의 '비밀'을 가장 많이 알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란 무엇이든 이야기해도 괜찮다 생각하기 때문에 어른들이 너무 쉽게 '비밀'을 진희에게 털어놓기 때문입니다.
진희는 소설 중간중간에 삶에 대한 자신의 고찰과 성찰을 드러냅니다. 진희는 사랑에 대해, 그리고 삶에 대해 냉소적입니다.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만이 쉽게 사랑에 빠질 수 있다고 합니다. 삶도 마찬가지이며 삶을 냉소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성실할 수 있다고 합니다. 마치 진희처럼 말입니다. 삶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광진테라 아저씨처럼 자기 삶에 대해 불평을 품기 마련이고 불성실하다고 합니다. 진희는 삶에 대한 기대가 없으니 감정의 동요가 크게 요동칠 일이 없습니다. 슬프고 두려운 순간들이 찾아오거나 사랑의 감정이 싹 틔울 때가 있지만, 스스로를 '바라보는 나'로 객관화하고 관찰하며 감정을 하나씩 지우는 것입니다.
유지공장의 나쁜 냄새는 복선처럼 계속 등장합니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언급하는 나쁜 냄새는 결국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유지공장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재앙으로 마을을 휩쓸어 버립니다. 이모는 가장 친한 친구이자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이형렬을 가로챈 경자 이모의 죽음을 알고 고작 남자 때문에 가장 친한 친구에게 상처를 줬다는 생각에 죄책감에 사로잡힙니다. 마냥 철없는 이모로 살 것 같던 이모는 비극을 통해 성장하고 성숙해집니다. 진희만의 성장소설이 아니라 주변 인물인 이모도 성장하는 모두의 성장 이야기입니다.
할머니는 언제나 이모는 나무라지만 진희에게는 측은한 마음으로 다정한 말만 건넵니다. 아마 부모 없이 키우는 손녀라서 그럴 것입니다. 할머니의 사랑을 온전히 받아왔지만 진희는 한편으로 할머니가 자신과 이모 둘 중 하나만 구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찾아오면 할머니가 자신을 선택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몇 번이나 언급되는 이 느낌은 진희가 성숙해질 수밖에 없던 이유를 설명해 주는 듯합니다. 그러고는 진희는 할머니가 자신과 이모 둘 중 한 명만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으로 스스로를 납득시킵니다.
소설은 카페 정원에서 진희가 움직이는 쥐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불안하고 두려운 대상이 있으면 진희는 그것을 뚫어지게 쳐다봄으로써 ‘거부감’을 극복했습니다. 사춘기를 겪으며 이성에 대해서나 성적으로 눈을 뜰 때도 뚫어지게 쳐다보고 부딪치면서 ‘거부감’이나 묘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또한 소설은 ‘떠남’에 대해서도 그려내며 생각해보게 합니다. 미스리는 어느 날 모든 돈을 훔쳐서 마을의 한 남자와 도망갑니다. 어른들은 왜 그 남자와 도망갔을까, 둘은 사랑의 도피를 한 것일까 생각하지만 진희는 그럴 리 없다고 합니다. 남자를 이용해서 더 큰돈을 훔친 것일 뿐 모험은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광진테라 아줌마는 순결을 광진테라 아저씨에게 뺏기고 결혼하게 되었고 아저씨의 여성 편력과 폭력에 시달립니다. 버스를 바라보며 떠날 결심을 했지만 떠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돌연 어느 날 사라진 아줌마는 며칠이 지나서 둘째를 임신한 채 또다시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집으로 돌아옵니다. 진희는 어른들은 자신의 삶을 너무 빨리 그리고 쉽게 결정짓는다고 합니다. 아줌마가 돌아온 것은 자기 생에 대한 의지는 강하나 스스로의 생을 분석할 줄 모르는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삶이란 똑같아서 떠나거나 새로운 길을 간다고 해서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고 합니다. 자신은 수동적으로 살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으로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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