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책을 읽으면 스트레스가 해소된다고 합니다. 휴대폰 숏폼 콘텐츠에서 오는 자극을 줄이려 하루에 조금씩 읽어보려던 책이 이제는 스트레스를 꽤나 받은 날 진득하게 앉아서 집중하게 하는 스트레스 해소 도구가 되었습니다.
최은영 작가는 2016년 등단작인 <쇼코의 미소>로 처음 접했는데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 감정을 담담하면서도 흡입력 있는 문체로 풀어냅니다. 페미니즘, 성소수자, 이민 등 사회적 문제를 통찰하고 비판하면서도 이야기를 따뜻하게 풀어내는 작가입니다. 최은영 작가의 책을 읽으면 쓸쓸함과 따뜻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듯합니다.
<쇼코의 미소>, <밝은 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총 3권의 책을 읽었는데 작가의 다른 책도 전부 읽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밝은 밤>은 100년에 걸쳐 4대를 이은 여자들의 인생 이야기입니다. 증조할머니, 할머니, 엄마, 그리고 나에게까지 모아 전해지는 과거가 현재와 이어지고 삶이 만들어집니다. 상처를 입고 이혼 후 희령이란 도시에서 어렸을 적에만 봤던 할머니를 만나며 듣게 되는 이야기에 주인공 지연은 빠져들고 치유됩니다. 하지만 치유되는 과정은 반드시 아픔을 다시 끄집어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더 고통스럽고 아프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얻게 되는 지연의 모습을 통해 지금 현실이 힘든 독자들도 함께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줄거리
"나는 희령을 여름 냄새로 기억한다"
남편의 바람으로 이혼한 주인공 지연은 어렸을적 할머니집에서 보냈던 즐거웠던 여름을 떠올리며 소설 속 도시 희령으로 떠나옵니다.
그동안 연락 한 번 하지 않았지만 서로를 알아본 할머니와 지연은 종종 시간을 보내게 되며 증조할머니인 삼천이와 새비 아주머니, 할머니 영옥의 삶에 대해 듣게 됩니다.
백정의 딸로 태어난 삼천이는 일제 시대에 살기 위해 처음 본 남자인 증조부와 개성을 갑니다. 백정의 딸이어서 그곳에서도 멸시받지만 새비 아주머니를 만나며 우정, 가족애를 넘어선 끈끈함을 갖게 됩니다. 전쟁을 겪으며 서로를 의지하며 가족보다 가까운 사이로 지내는 둘의 모습은 마음이 아리기까지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매몰찬 중에도 서로가 서로의 의지할 동아줄 같아 보입니다.
할머니인 영옥은 증조부가 찍어준 남자와 혼인을 하지만 그는 좋은 남편이 아니었거니와 개성에 이미 부인과 자식이 있었습니다. 그가 원래 부인에게로 돌아가며 할머니는 엄마 미선을 홀로 키워냅니다. 지연은 할머니와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가 왜 '평범하게 사는 것이 꿈'인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됩니다.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 주고 싶었다"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 장기를 꺼내서 깨끗하게 씻어서 다시 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마음도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남선의 모진 말들은 얼마든지 견딜 수가 있었다. 하지만 명숙 할머니의 편지를 읽으면 늘 마음이 아팠다. 사랑은 할머니를 울게 했다. 모욕이나 상처조차도 건드리지 못한 마음을 건드렸다."
남편의 모진 말들은 마음의 귀를 닫고 견딜 수 있었지만 사랑이 담긴 명숙 할머니의 마음은 할머니를 울게 합니다. 마음을 울리고 약하게 만드는 건 모욕이나 상처가 아닌 사랑이었습니다.
"인간이 측량할 수 없는 무한한 세계가 지구 밖에 있다는 사실은 나의 유한함을 위로했다."
책을 술술 읽으며 장을 넘기다가도 유난히 따뜻하고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이 마음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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