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김연수 작가의 단편 소설집 <너무나 많은 여름이>를 읽었습니다. 눈이 펑펑 내리던 날 기차 여행을 떠나면서 읽었는데 창밖 풍경과 책 제목이 상반되어서 왜 이 책을 골랐을까 잠시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낭독을 위해 써 내려간 짧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단편 소설들이어서 기차 여행에 딱 어울리는 책이었습니다.
작가의 인생 조각조각이 모인 이야기들을 하나씩 들려주는 느낌입니다. 실화에 기반한 이야기도 최근 발생했던 사회적인 사건에 기반한 이야기도 작가가 만들어낸 다양한 인물의 관점으로 하나씩 들려줍니다. 사람에 관심이 많고 사람을 좋아하는 작가님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편 소설 중 소설가의 이야기도 나오는데 소설을 쓰고 출판하는 이유는 오직 이유 없는 다정함이라고 말합니다. 이유 없는 다정함이 작가님이 글을 계속 쓰는 고백이라 느껴졌습니다. 그런 작가가 쓰는 다정한 소설은 독자에게도 다정하게 다가옵니다.
줄거리
<너무나 많은 여름이>를 읽으며 기억에 남는 단편 소설 몇 가지만 소개하려 합니다.
<여름의 마지막 숨결>은 학창 시절 괴롭힘을 당했던 남학생의 이야기입니다.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야. 어릴 때부터 많이 듣던 말이다. 다 거짓말이다. 우리는 싸우면서 쪼그라든다.'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는 말은 많이들 하는 말입니다.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 입장에서는 그 말이 얼마나 폭력적이었을까요. 남학생들 사이에서 서열이 어느 정도 다 정해진 후 한 친구가 스스로를 비폭력주의자라 칭하며 싸움을 거부합니다. 비폭력주의자라는 단어도, 친구도 멋있어 보여 남학생은 친구가 즐겨 듣던 노래를 함께 듣고 좋아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 몸집이 또래에 비해 컸고 어느 날엔 싸움에 응합니다. 그리고 싸움에서 이기게 됩니다. 그 이후 묘하게 달라진 친구는 이제는 담배도 피우며 주인공과는 점차 멀어지게 됩니다. 동경하던 또는 좋아하던 학창 시절 친구가 어느 날 멀어지게 되는 경험은 누구나 있어서 저 또한 이제는 잊힌 옛 친구들을 생각해 봤습니다.
<고작 한 뼘의 삶>에서는 소설가의 삶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소설가의 재능이란 꿈꾸는 일이 전부라고 합니다. 기자였을 시절 추락한 베스트셀러 작가를 인터뷰했는데 그때 그 작가는 주인공에게 재능이 있냐고 묻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나의 탁월함이라고 착각해 꿈꿀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재능을 뜻한다는 것을 망각한 나처럼'이라며 스스로는 재능이 있었지만 이를 망각하고 놓쳤다고 합니다. 그 작가는 꿈을 꿀 때마다 어떤 서점에 들어가게 되고 그 서점에서 이름이 적히지 않은 소설에 자신의 이름을 적을 기회를 얻는다는 꿈 얘기를 해줍니다. 그리고 잠에서 깨면 그 소설을 내 이름으로 쓰고 출간하면 많은 부수가 팔립니다. 주인공은 많은 욕심을 부리지 않고 그 꿈을 똑같이 꾸고 일생동안 고작 한 뼘만큼의 소설책을 꿈에서 보고 출간합니다.
제일 좋았던 단편은 <저녁이면 마냥 걸었다>였습니다. 상실을 경험한 이가 끝없는 분노를 느꼈다가 초월하고 용서하며 또 계속해서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달은 천년 전의 달과 똑같은데, 사람은 한 번 헤어지고 나면 영영 다시 만나지 못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경주로 수학여행을 가던 자식이 교통사고로 죽고 엄마는 경주에 와서 마냥 걷다가 달을 보며 많은 감정을 느낍니다. 걷다가 자식을 그리워하고 눈물 흘려도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어 그게 좋아서 또 마냥 걷습니다. 엄마는 경주에 책방을 차리게 되고 저녁이면 마냥 걷습니다. 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크고 작은 상실을 경험하게 되고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나는 계속해서 살아가게 됩니다. 상실을 극복하지는 못하지만 또 계속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여주는 것이 꼭 인생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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