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s

고래 - 천명관 장편소설 소개, 줄거리

by 지슈룬 2024. 9. 18.
반응형

 

소개

천명관 소설가의 <고래>는 2004년 제10회 문학동네 소설 상을 받은 세상에 나온 지 벌써 15년이 넘은 작품입니다. 비교적 최근인 2023년에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선정되어 다시 뜨겁게 주목받았습니다. 
읽는 내내 저항감이 들었지만 신화 같은 이야기에 몰입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존에 생각하던 또 우리가 흔히 읽던 한국 소설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작가는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에 새롭게 도전하고 있으며 소설이라는 장르를 확장한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고래>라는 작품명보다 오히려 오랜 한국 역사 속 <홍길동전>, <박씨부인전>과 같이 <금복전>, <춘희전>이라 이름 붙여도 잘 어울렸을 것 같습니다. 아주 구체적인 구전동화 같기도 합니다.
이번 추석 연휴 때 이 책을 집어 들어 읽어 내려간 건 잘한 일이라 생각들었습니다. 요즘 많이 읽는 자기 계발서에서 벗어나 침대에 누워 빠져든 소설 속 이야기는 기이하고 새로웠습니다. 특히 금복이 여자로서의 성정체성을 버리고 수련을 사랑하며 탐욕적이고 치졸한 나이 든 남자가 되어가는 과정은 결말이 궁금해서 빨리 읽고 싶지만 읽는 내내 거부감이 드는 부분이었습니다. 쓰고도 단 이 소설은 다 읽고 나서도 마음이 복잡해 딱 어떻다고 정의하기 어렵지만 한국소설에 없던 장르를 여는 큰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줄거리

소설은 크게 3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부와 2부는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평대에 이름난 사업가로 자리 잡았다 몰락하는 금복의 생을, 3부는 금복의 딸로 태어난 남들과는 다른, 기이한 춘희의 생에 대해 풀어나갑니다. 두 중심인물이 있지만 박색의 노파부터 생선 장수, 걱정, 쌍둥이 자매, 코끼리 점보, 약장수, 벌을 몰고 다니는 노파의 딸까지 다양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들의 생과 죽음까지 다루어 이야기는 마치 대하드라마 같기도 합니다. 현대 시대의 흐름과 정치적인 내용까지 등장해서 근대 소설인가 싶기도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면모를 보면 판타지 소설에 가깝습니다.
소설의 제목인 <고래>에 대해 금복은 동경과 이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고향을 떠나 생선 장수를 따라간 부둣가에서 처음 대왕고래를 본 순간부터 생명체의 거대한 아름다움에 빠져들었으며 평대에 극장을 지을 때는 고래 모양을 본뜬 극장을 짓습니다. 고래, 코끼리 점보, 걱정, 걱정과 금복의 딸 춘희는 모두 거대한 생명체입니다. 거대하고 아름답고 순수하지만 외롭게 살아가며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얼마 전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인류의 등장 이후 얼마나 수많은 거대한 생명체들이 멸종했는가에 대해 읽었는데, <고래> 속 거대한 생명체들 또한 아름답지만 비극적인 엔딩을 맞이해 우연인가 싶었습니다. 
<고래>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구조가 매우 다채롭다. 춘희가 감옥에서 나와 무턱대고 벽돌공장을 향해 걷는 이야기부터 소설은 시작됩니다. 그 후엔 그보다 훨씬 전에 살았던 박색의 노파 생에 관해 얘기합니다. 그러다 금복의 이야기로 넘어옵니다. 금복은 생선 장수의 생선 장사를 건어물 장사로 탈바꿈시키며 사업가의 면모를 어릴 때부터 보입니다. 덩치가 기이하게 크지만 순수한 걱정과 사랑에 빠지지만 불의의 사고로 쓸모가 없어진 걱정을 먹여 살리기 위해 금복은 그녀를 나오꼬라고 부르는 칼잡이의 애인이 됩니다. 칼잡이가 걱정을 바다로 밀쳐버린 줄 아는 금복은 칼잡이를 찔러 죽이고 이후 평대로 떠나옵니다. 쌍둥이 자매의 코끼리 마구간에서 춘희를 출산합니다. 걱정이 죽은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춘희는 걱정을 쏙 닮았습니다. 평대에서 국밥집을 하다가 다방을 여는 금복은 비 오는 날 집 천장이 무너져 돈벼락을 맞습니다. 바로 노파가 평생을 모아 온 돈과 땅입니다. 벼락 맞은 돈과 땅문서 중 하나였던 큰 땅에 벽돌공장을 문과 함께 짓습니다. 소설에는 굉장히 외설스러운 장면과 묘사가 많이 나와서 가볍게 읽다가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춘희가 살아가는 모습은 현대의 인간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옛날 수렵채집인의 모습과 같습니다. 원시적으로 뱀의 목을 물어뜯어 날것 그대로 먹고 곤충과 같은 생물을 집어 먹는 것이 거부감이 들지만 생각한다면 모든 것이 이해됩니다. 말하지 못하는 벙어리지만 코끼리 점보와는 소통할 수 있고 통뼈로 태어나 엄청난 완력으로 아버지 걱정처럼 남들과는 다른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미세한 감정들을 읽을 수 있었고 누구보다 아름답고 섬세하게 완벽한 벽돌을 구울 수 있었습니다. 인간을 두려워했지만 그리워해 끊임없이 벽돌을 구웠고 추후 가장 아름다운 대극장의 벽돌로 춘희의 벽돌들이 쓰이면서 ‘벽돌의 여왕’으로 이름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그린 벽돌 위 그림들은 마치 오래전 원시인들이 동굴에 남긴 벽화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생전에 춘희를 찾은 트럭 운전사 외에 춘희는 평생을 홀로 외롭게 벽돌만 구웠습니다.
소설에서는 노파도 금복도 모성애가 없습니다. 노파에게 모성애가 생기던 짧은 찰나가 있었지만 결국 그녀는 딸의 눈을 애꾸로 만듭니다. 금복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춘희에게 다정하게 대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 짧게나마 후회합니다. 등장하는 여성 인물 중 모성애가 있었던 건 춘희입니다. 인간보다는 동물에 가까운 원시적인 춘희만 아기가 죽기 직전까지 최선을 다해 먹이를 구하고 본능적으로 아기를 보호합니다.
노파-금복-춘희에 이어지는 주인공들은 전부 여자 주인공들입니다. 남성 중심의 역사에서 소수지만 역사를 써 내려간 여성을 중심으로 한 소설입니다. 그리고 금복이 남성으로서 정체성을 탈바꿈 선언하면서 그녀 혹은 그는 서서히 몰락해 갑니다.  
소설은 아래의 문장으로 끝납니다. 마지막 문장은 소설 전체를 더욱 하나의 설화이자 신화처럼 만들었습니다. 
'몇 년이 흘렀다. 그녀는 홀로 벽돌을 굽고 있었다. 공장을 찾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