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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종의 기원 - 악의 3부작 정유정 소설 소개, 줄거리

by 지슈룬 2024.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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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종의 기원>

 

소개

한국 스릴러 소설을 대표하는 정유정 작가의 3년 만의 신작입니다.

<7년의 밤>, <28>에 이은 정유정 작가의 '악의 3부작' 시리즈 중 마지막 작품입니다. <28>은 아직 읽지 못했지만 <7년의 밤>을 처음 읽었을 때 밤을 새우며 한숨에 몰입해서 읽어 내려갔던 기억이 났습니다. 작가가 앞으로는 어떤 책들을 펴낼까 기대했었고 <종의 기원>은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켜 주는 책이었습니다.

 

밀리의 서재 오디오북으로 들었던 책인데 처음 1장에 상황 묘사하는 부분이 길어 전개가 느리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책 자체가 길어서 1장을 들으면서 몇 번이나 포기할까 생각했는데 중반부를 넘어서서부터는 굉장한 몰입감에 일부러 출퇴근 길을 돌아가며 오디오북을 들었습니다.

 

주인공은 한유진이라는 26살 청년으로 스스로의 사이코패스적 기질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자신 속의 악을 마주하게 되는 스토리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사이코패스이지만 스스로 살인을 저지른 것조차 잊고 있던 유진에게는 왠지 모를 동정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엄마와 이모로부터 억압 받아 착한 아들이 되려 노력했던 모습이나 사건을 추리해 나가면서 복합적인 감정을 스스로 느끼는 것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선과 악은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으며 누구나에게 악의 모습이 공존한다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였습니다.

작가는 사이코패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묘사하고 스토리를 끌어가는 것이 어려웠지만 사이코패스가 된다면 유진과 같은 사이코패스가 되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도록 글을 썼다고 합니다. '악'에 대한 시선을 유지하며 '악' 자체가 되어보는 경험을 독자들에게도 선사한 것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유영철이 문득문득 떠올라서 그 사람이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범죄를 저질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실제로 작가는 유영철과 일부 유명한 사이코패스를 모티브로 유진이라는 캐릭터를 구상했다고 합니다. 

 

<종의 기원>이라는 책 제목이 찰스 다윈의 책 제목과 같아서 제목의 어원이 궁금했습니다. 작가의 말에서 힌트를 볼 수 있었습니다. 살인은 인간이 경쟁자를 제거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고, 이 구조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우리 조상, 즉 종의 기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악과 선은 완전히 분리할 수 없으며 사람은 누구나 다 악의 영역을 마음 속에 가지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주인공 유진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두려워하는 존재'를 사랑하며 자극받는 극악한 존재이지만요. 처음에는 '악의 기원'이라는 제목을 붙이려다가 문학적인 요소를 가미해 <종의 기원>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고 합니다. 

1장의 다소 지루할 수 있는 심리적인 묘사 부분만 지나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몰입감이 휘몰아치는 스토리 전개가 이어져 한국 스릴러 소설로 추천합니다. 

 

줄거리

혜원은 선언하듯 말해버렸다. "유진이는 포식자야.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최고 레벨에 속하는 프레데터" 

26년 동안 엄마와 이모에게 통제 당하며 살아왔던 유진은 어느 날 아침 피범벅인 모습으로 잠에서 깨어납니다.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채로 집안을 돌아다니다가 처참하게 살해당한 어머니의 시신과 맞닥뜨립니다. 모든 정황과 증거가 범인을 자신으로 가리키지만 유진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자신보다 한 살 많은 '해진'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고아가 되자 유진네 집에 입양되었습니다. 소설 속에서 유진이 가장 애착과 감정을 가지고 함께한 인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진은 해진이 돌아오기 전 집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의심을 사지 않으려 합니다. 모든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하나 추리해 나가며 유진은 스스로가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아갑니다. 불완전하고 미성숙했던 '악'에서 자신 속의 진정한 '악'을 마주해 나갑니다. 그 와중에도 유진은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자신을 범인으로 지목할 만한 증거들을 숨겨 나갑니다.

 

유진은 어머니 외에도 동네에서 한 젊은 여자가 살해된 살인 사건이 어젯밤 일어났음을 알게 되고 사건을 파악해 봅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일기를 읽으면서 어렸을 적 형과 아빠가 바다에서 실종되고 죽은 사건이 자신과 깊은 연관이 있게 됨을 알게 됩니다. 모든 사건의 중심에는 유진이 있습니다. 젊은 여자의 죽음, 형과 아빠의 죽음, 어머니의 죽음, 이모의 죽음, 그리고 마지막 죽음까지도요. 

 

소설의 중반부로 들어서면서 진실들이 하나씩 파헤쳐지고 유진의 악이 더 잘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일기 속에서 어머니가 얼마나 유진을 사랑했었는지, 걱정했었는지, 그래서 사랑으로 아이를 끝까지 자신의 품안에서 지키고 싶어 했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진은 어머니의 마음에 동정심이나 안타까움을 느끼기보다는 '그러면 그러지 말았어야지'하며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유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장 친밀하다고 느꼈던 해진에게도 사실을 가감 없이 알려주지만 끝내 해진이 자신의 편에 서지 않는다는 것을 알자 죄책감 없이 그와 선을 긋습니다. 

 

포식자 중에 최고의 위치에 있던 사이코패스 중 사이코패스가 완전한 악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그의 심리적 묘사가 소름이 끼칩니다. 사이코패스의 자기정당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을 엿본 느낌입니다. '악' 자체가 된 유진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유진의 입장에서는 그가 잘못한 점이 없습니다. 과하게 장난을 치고 유진에게 새총을 쐈던 어렸을 적 형이나 어린아이에게 '포식자'라는 타이틀로 모든 걸 억제하며 살아오게 했던 이모나 그토록 좋아하던 수영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막았던 엄마에게 잘못이 있습니다. '악'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또 얼마나 치밀해질 수 있는지 소름 끼치며 볼 수 있는 스릴러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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