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한국 시 번역가들을 인터뷰한 산문집으로 순수한 것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낄 수 있던 책이었습니다.
은유 작가가 인터뷰한 한국 시 번역가들은 하나같이 사랑과 감탄의 언어를 원 없이 말합니다. 스스로 '과몰입 성향'이라 칭할 만큼 아름다운 것을 보는 자세와 감탄하는 능력을 장착했습니다. 순수한 것을 보며 있는 그대로 생각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며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읽는 내내 '좋아하는 일'을 원 없이 열정으로 해보는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낄 수 있었고 닮고 싶었습니다.
힘들어도 한다가 아니라 힘드니까 해볼만하다는 일, 아무리 좋아하고 해보고 싶은 일이라도 그 과정은 몹시도 고됩니다. 지난한 과정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똑같습니다. 그래서 조급함 한 스푼이 필수라고 합니다. '어서 빨리' 이걸 누군가에게 보여줘야지 하는 조급함이 필요합니다. 저는 계획은 항상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그 조급함 한 스푼이 부족합니다. 조급함 한 스푼을 제 머릿속에도 아차하고 떨어트려야겠습니다.
안톤허 번역가는 데뷔작 <리진>을 내기까지 번역원 졸업 후 9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 공백의 시기를 '죽음의 계곡'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악조건 속에서도 이 일이 네가 진실로 하고 싶은 일인지 계쏙해서 자문하는 시기였다고 합니다. 저도 가끔 제가 공백의 시기에 빠져 있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제가 진정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계속하고 싶은 것인지 스스로에게 계속 묻고 답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일, 또는 시도하는 새로운 일이 계속하고 싶다는 확신이 있다면 그 꾸준함은 안톤허 번역가처럼 결국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요.
'사랑에 잘 빠지는 사람이지만 그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에너지를 끌어올릴 수 있는 근성 있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작가는 사용합니다. 제가 되고 싶은 사람입니다. 저는 사랑에 잘 빠지지만 쉽게 식기도 합니다. 그 사랑을 증명하는 데까지 제 힘을 끌어올리는 연습을 해보는 중인데, 연습들이 쌓여서 결국 근성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모습은 비슷하다.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느낌. 피가 빠르게 도는 느낌. 그건 몸의 명령이다. '너 이거 해라.' 거역할 수 없다"
산문집 전체가 하나의 시 같았습니다.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다니요. 그 짜릿한 감정을 시각화하여 표현한 이 문장이 좋아서 노트에 몇 번이나 반복해서 써봤습니다.
"전율! 딱 됐을 때의 익숙한 전율!"
무언가를 해냈을 때 느끼는 전율을 한 번 느껴보면 그 전율에 중독됩니다. 회사, 집, 회사, 집 반복적으로 주어진 일만 적당히 하며 살아가고 있는 스스로를 반성하게 됩니다. 내가 그런 전율을 마지막으로 느꼈을 때가 언제였더라 생각하며 전율이 주는 느낌을 되찾고 싶어졌습니다.
작가가 인터뷰하는 모든 이들은 성소수자이기도 페미니즘 소설을 번역하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시 번역가들의 인터뷰를 풀어가는 작가의 문체와 방식이 좋아서 다음 인터뷰를 술술 읽게되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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